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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검은 비닐봉지는 '감춤'과 '비밀'의 표상이다. 자신의 무엇을 품고 있는지 감추고, 입을 꼭 다문 채 비밀을 안고 버려지기도 하고, 숨겨지고 잊혀지기도 한다. 우리는 왜 그 연약하고 못생긴 검은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야 안심이 될까? 그것이 자꾸 내 삶으로 스며들어 쌓여갔다. 그리고 나는 그 검은 비닐봉지에 나의 기억과 시간을 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그것을 열어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고. 지나간 따뜻한 기억을 소환해내기도 한다. 우리는 왜 검은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고 안심을 할까? 군중 속에 검은 패딩으로 나를 숨기고, 너와 내가 구별하기 힘든 익명성 속에서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튀면 안 된다. 오랫동안 들어온 말이다. 누군가의 손가락질을 받으면 위험하다. 저 사람이 반역자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의미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누군지 숨겨야 한다. 그리고, 내가 누군지 숨기기 위해 내가 가진 것도 숨겨야 한다. 내가 조금 전 약국에서 산 약도, 꼭꼭 숨겨둔 비상금도, 핏물이 고인 고깃덩어리와 머리가 잘린 생선의 몸뚱아리처럼 숨겨야 한다. 검정 비닐은 주로 음식물을 사면서 내 삶 속으로 들어왔지만 내 삶에서 떠날 때는 음식물 쓰레기나 타인에게 들키기 싫은 물건을 담고 사라지는 유용한 물건이다. 그런 검정 비닐봉지가 불편한 오브제로 발견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계시던 엄마의 냉장고를 비워냈을 때였다. '검정 비닐봉지'들이 언제 산지 기억나지 않는 고깃덩어리, 미이라처럼 말라비틀어진 생선, 해묵은 고춧가루 같은 화석화된 것들을 토해냈다. 엄마는 '다 먹을 수 있는 것인데 왜 버리냐'며 다시 냉동실로 밀어 넣었다. 다시 냉장고 구석으로 웅크리고 앉은 검은 덩어리는 거기가 원래 자기 자리인 듯 몸을 숨겼다. 그렇게 삶의 한구석에 비밀을 담고 숨어버린 검은 비닐봉지는 길거리에서도 발견됐다. 비밀을 품고 버려지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아파트 그늘진 담벼락 아래에도 공원 벤치 아래에도 도로 위에도 무언가 품고, 그리고 무언가 품었다가 토해버린 껍데기처럼 버려졌다. 그것이 마음에 새겨진 후로 나는 시커먼 비닐봉지들을 모으기 시작했었다. 검은색의 불투명이 지니는 속성, 그것은 검은 내부로 기억을 삼킨다. 자기 안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감추고, 입을 꼭 다문 채 누군가 열어보기 전까지 구석에서 홀로 잊혀진다. 검정 비닐 속에 담긴 기억을 분실하고 은밀히 파묻는다. '검은 비닐봉지'는 잊혀지고 싶은 비밀을 담은 시간의 기억이기도 하다.

 

2020. 11  이진경

<Portrait 1>

Digital Pigment Print, 125x100cm, 2019

<Portrait 2>

Digital Pigment Print, 125x100cm,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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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3>

Digital Pigment Print, 125x100cm,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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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4>

Digital Pigment Print, 80x64cm,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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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5>

Digital Pigment Print, 80x64cm,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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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6>

Digital Pigment Print, 80x64cm,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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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7>

Digital Pigment Print, 80x64cm,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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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8>

Digital Pigment Print, 80x64cm,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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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3>

Digital Pigment Print, 75x153cm,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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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Digital Pigment Print, 75x153cm,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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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dala 108>

Digital Pigment Print, 120x120cm, 2019

반포한강공원_01

 30x40cm, Digital Pigment Print, 2019

여의도한강공원_01

 30x40cm, Digital Pigment Print, 2019

양화한강공원_02

 30x40cm, Digital Pigment Print,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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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촌한강공원_01

 30x40cm, Digital Pigment Print, 2019

잠실한강공원_01

 30x40cm, Digital Pigment Print,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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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한강공원_01

 30x40cm, Digital Pigment Print,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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